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세포이 항쟁 (문단 편집) == 화약 탄포 문제 == [youtube(PhPGcoEdSiM, start=101)] (영화 '만갈 판데이' 중. 엔필드 강선 머스킷의 장전 및 사격 방법. 1분 40초부터 보면 된다. 사실 동영상 앞부분에 탄포를 싣고 움직이던 마차가 파손되어 탄포가 거리로 쏟아진 부분도 해당 장면의 복선이다.[* 거리의 [[개]]들이 쏟아진 탄포로 우르르 몰려드는 것 자체가 동물기름을 사용했다는 의미이다. 기본적으로 동물성 기름중에 공업용으로 쓸 정도로 생산성이 제대로 나오는건 [[소기름]]과 [[돼지기름]]이다.] 단, 원형 머스킷 볼이 들어가는건 고증오류로, 동물성 기름이 사용된 원인이 하술될 [[미니에 탄]]과 프리쳇 탄의 특성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youtube(K-EI8FvXxlk, start=106)] (1분 40초. 실제 미니에 탄의 장전 및 사격 방법.) [youtube(0o8ag9EhY0w, start=9)] (9초. 실제 프리쳇 탄의 장전 및 사격 방법. 종이 탄피의 끝단을 찢는 장면이 생략되어있다.) 영국군과 세포이 간에는 산발적인 충돌이 있었다. 1857년 3월 29일 벵골군 세포이였던 망갈 판데이(1827~1857)가 지휘관의 명령에 불복하고 지휘관의 말까지 쏘는 [[하극상]]을 벌이자 연대장은 판데이의 체포를 명령하였으나 단 한 명을 제외한 모든 세포이들이 지휘관의 명령을 거부했다. 그 외에도 아그라 등 많은 도시에서 충돌이 있었다. 이는 1857년 5월 10일 [[델리]] 북쪽 미루트에서 발생한 '화약 탄포 문제'를 게기로 항쟁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단순한 화약 탄포가 일을 크게 만든 것은 바로 영국인이 '''[[소]]와 [[돼지]]의 기름을 탄약 종이에 칠했다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다 당시 세포이들은 총을 장전하기 위해 총탄의 종이 부분을 입으로 물고 뜯어야 했는데 힌두교도들은 소를 신성시하고, [[무슬림]]들은 돼지를 부정한 것으로 여겼으며, 세포이로서 징집된 사람들은 대부분 이 두 종교 중 한쪽을 믿고 있었기 때문에 군대가 발칵 뒤집힌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특히 힌두교도는 쇠고기를 입에 대면 [[카스트]]를 강등당하게 되는데 벵골군 세포이들은 상층 카스트가 많았기 때문에 다른 지역보다 더더욱 분노했다고 한다. 본래 세포이들은 카스트에 상관없이 모집했으나 벵골군의 경우에는 플라시/북사르 전투로 인해 이 전투에 참여하지 않은 상층 카스트를 모집하고, 이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힌두교 의식/방식도 허용하였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로 인해 벵골 세포이들은 영국 문화에 더더욱 반감을 가지게 되었다. 사실 근거 없는 소문은 아니었다. 당시 [[전장식]] [[머스킷]]에는 흑색화약 정량을 종이에 납탄과 함께 싸서 끈으로 묶거나 접착제로 밀봉하는 [[페이퍼 카트리지]]를 사용했는데, 이를 사용하려면 종이로 된 화약 탄포 한쪽을 '''[[이빨]]로 찢어서''' 탄포 안에 든 화약을 총구에 부어 넣은 뒤, 입안에 있던 뭉쳐진 카트리지 종이를 총알 뒤에 넣어 화약이 새어나오지 않도록 하는게 원칙이었다. 따라서 이 시기의 페이퍼 카트리지는 방수를 위한 왁스 코팅과 윤활을 위해 탄약이나 총열에 동물성 기름을 소량 도포하는 정도로 충분했고, 정기적으로 총열을 청소하며 기름칠을 해주면 되었기에 크게 문제시 되지 않았다. 게다가 당시 다른 국가와 달리 영국 교범에선 종이탄피의 화약부를 뜯어내는게 표준이다보니 총알에 미약하게 기름이 발라져 있어도 세포이들 입장에선 잘 알아차리기 힘들었다. 그런데 새로 보급된 엔필드 1853 강선 머스킷은 [[미니에 탄]]과 프리쳇 탄을 사용할 수 있는데, 해당 탄환들의 형상적 특성[* 원추형의 뭉툭한 부분을 총신에 넣어야하는데, 하필이면 그 부분의 속이 파여있기에 강선이 파인 총열 내부에 걸릴 가능성이 있다.]으로 인해 총알이 충분히 윤활되어야 할 필요가 생겼다. 이에 따라 미니에 탄의 경우 총알 외부에 파인 홈에 기름이 잔뜩 먹여놓았고, 프리쳇 탄은 아예 탄환이 들어있는 페이퍼 카트리지 하단부를 기름에 흠뻑 적셔놓았다. 이렇게 대놓고 총알에 동물성 기름이 발라져 있던게 화근이었다. 사실 영국 당국의 생각은 '''[[기만|기존 총알과 별로 달라진 것도 없는데]][* 앞서 언급되었듯 기름 자체는 기존에도 있었다. 다만 미니에 탄의 홈에 대놓고 발라져있거나 프리쳇 탄의 페이퍼 카트리지 하단부에 듬뿍 적셔진 것 처럼 대놓고 보이지 않았고 영국인들도 딱히 문제시 되지 않은 사항을 알려주지 않았을 뿐], [[탁상행정|총신에 기름을 바르지 않아도 되고]], 총도 가벼워진데다가 장전하기도 쉬우니 세포이들은 분명히 좋아하겠지'''였고, 이것 때문에 세포이 전원에게 이 총을 지급하려고 했다. 진영이 자꾸만 어수선해지자 여기에 이 문제에 대해 영국인 장교들이 "그럼 니네들이 새로 만들어서 밀랍이나 양기름으로 코팅하셈"이라고 말한 것이 결정적인 화근이었다. 즉 '''기름 문제는 사실로 받아들여졌기 때문.''' 나중에 영국이 조사한 결과 소기름은 확인되었으나 돼지기름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하는데 어쨌든 이 사건은 인도인들의 대대적 분노를 부르게 된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심각해지자 영국 측에서는 교본을 수정해 손으로 뜯어도 되는 방향으로 수정할 것을 권고했으나 대부분 시정되지 않았고, 오히려 명령을 거부하는 세포이들을 하극상으로 [[불명예 제대]], 심지어는 [[교수형]]까지 시켰다. 영국군도 처음에는 이런 세포이들의 불만을 접수하고 장교들이 이를 개선할 것을 본국에 정식으로 건의했지만 본국에서는 별것이 아닌 문제로 무시해버렸다. 식민지 현지의 문화에 무지하고 종교 문제의 민감성이나 폭발성에 무지하여 일어난 대표적인 [[문화충돌]]의 사례.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